두 송이의 해바라기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을 알게된 것은
지난 가을 산티아고의 길을 걷고 있던 때였다.
헤어지기를 아쉬워한 해바라기 꽃이
영원히 함께있기 위해 눈에 들어왔다는 스토리...
동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내가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저 내게는 현실만 같았다.
생전에 생각도 못해본 전공으로 코넬에 오게된 일...
이스터섬에서 하루에 70Km 씩 달리던 날들...
바람과 별에 운명을 걸어보던 시간들...
산티아고의 길을 걷던 나날들...
동전 몇 개에 인생 전부를 걸어보던 순간...
그리고 최근에 킬리만자로에 오를 운명을 느끼게 되기까지...
그 때 해바라기 꽃이 피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스쳐가는 인연,
혹은 더 긴 시간을 머물어가는 인연에서
나는 다음 인연에 대한 힌트를 찾고,
그렇게 여행은 계속된다.
스쳐가거나 오래 머물거나
내가 좋아하는 그들의 멋진 모습들은
마치 퀼트처럼 나의 부분부분을 짜맞춰지고,
다시 보지 않을 운명이라도 내게는 흔적이 남겨진다.
이 스토리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알 수 없고
어디에서 끝나게 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지만
그 때 해바라기 꽃이 피지 않았더라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여정이었다.
모든 이야기는 작은 해바라기 밭에서 시작되었다.
2005. 2. 21
작년 11월 유럽에서 돌아온 이후로
봄되면 집 마당이나 가꿔서 사진이나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 때부터 여러가지 계획을 해봤는데
무슨 꽃을 심을 지 결정하는 데 좀 망설여지곤 했다.
예전에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에델바이스 씨앗을 구할 수 있나 알아보고 다닌 적이 있다.
당시 꽃집 주인들은 모두 미소로 대답했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내가 사운드오브뮤직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꽃을 심지는 못하더라도 씨만이라도 구하고 싶었는데
결국 포기하고 돌아왔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에델바이스에 대해서 알아보았더니
고산지대에서만 핀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재배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다가 한동안 수선화나 나팔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해바라기에도 은근히 관심갖기 시작했다.
오늘 대충 계획을 구체화해보고 조금 공부도 해봤는데
해바라기가 은근히 종류가 많다.
단순히 크기로 말하면 40cm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종류와
1.5m 정도는 정도 자라는 품종이 있는데
지금 둘 중 어느쪽이 괜찮을지 고민하고 있다.
2005. 4. 11
비가 내렸던 토요일에 양재 꽃시장에 가서 해바라기 씨를 구했고
잠깐 비가 그쳤을 때 해바라기를 심을 땅을 고르는 작업을 했는데
갑자기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해서 오늘 하기로 미뤘었다.
오전 11시쯤부터 땅을 한번씩 파헤치면서 돌을 골라낸 다음 비료를 섞어주었는데
생각보다 시간도 오래걸렸다.
햇빛이 많지 않고 토질이 그다지 좋지가 않은데다가
개들이 밟을 가능성이 높아 조건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발아율이 평균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되어서
씨는 보통보다 많이 심었다.
같은 곳에 하나 이상의 싹이 틀 경우
그대로 옮겨주어야 되는 등 한동안 손이 많이 갈 것 같다.
마지막으로 꽃시장에 가서 자연 울타리로 쓸 식물을 사서 해바라기 밭 주변에 심었다.
그렇게 해바라기 밭이 완성되었다.
오늘 하루 전부 여기에 투자한 것 같다.
해바라기 밭 이름은 <해바라기 영토> 라고 부를 게 될 듯 하다.
(다른 괜찮은 이름이 또 있으려나...)
앞으로 사진도 많이 남기면서 열심히 길러봐야겠다.
PS.
구글이가 들어가지 않도록 교육 시키려고 했다가 포기했다.
내말은 절대 안 듣는다.
아, 물론 간식을 손에 들고 있는 동안만은 말 잘 듣는다.
2005. 4. 17
오늘 예비용으로 심은 해바라기 화분을 살펴보다가 처음으로 싹을 발견했다.
정확히 심은 지 1주일 만이다.
혹시나 싶어서 해바라기 영토도 자세히 살펴봤더니
벌써 여기저기에 싹이 보이는 것이었다.
매일 떨어지는 목련잎을 치워주면서 싹이 안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흙 위로 살짝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싹들을 보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늘도 해바라기 영토에 떨어진 목련 잎을 손으로 치워줬는데
그러면서 낙엽 밑에 숨어있던 싹들도 발견 되었다.
#1 예비 화분의 싹
#2~4 해바라기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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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첫 싹이 튼지 5일째다.
생각보다 싹이 많이 텄기 때문에 이제 조금 더 자라면
일정한 땅에 싹을 하나씩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해바라기영토 밖으로 옮겨 심어줘야 된다.
영토 확장이라고 할까나...?
해바라기에게 최적인 환경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 걱정했는데
목련 꽃잎은 이제 다 떨어져서 더이상 위협이 되지 않고
구글이도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해바라기영토는 피해서 다닌다.
#1~3 해바라기영토
#4 예비 화분의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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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18
어제 밤부터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더니
오늘 아침에 나가보니까 해바라기가 거의 모두 쓰러져있었다.
이렇게 약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자세히 보니까 일부는 줄기가 갈라지기도 했다.
처음 이 광경을 보았을 때는 정말 막막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일단 나무막대로 버팀대를 만들어 실로 고정하기로 했는데
이 작업하는게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2시간도 더 걸린 것 같다.
앞으로 햇빛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태양을 가리고 있는 목련 가지를 조금 쳐주었다.
일단 수습은 했지만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며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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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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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6. 22 - 해바라기 영토 50일 - 흔들리는 일은 있어도 다시 쓰러지지는 않는다.
처음 해바라기를 심을 생각을 했던 때는 2월 중순 즈음이었다.
한동안 구체적으로 해바라기에 대해 알아보던 나는
2월 21일이 되어서 처음으로 해바라기에 대한 포스트를 썼고
그 때쯤부터 이 일은 단순히 특정한 식물을 심는 일이기보다는
내 자신에게 의미있는 일이 되고 있었다.
봄이 왔다.
원래 식목일에 씨를 심을 생각이었지만
그날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4월 10일에 파종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걱정도 많았다.
이 땅에서 해바라기가 과연 자랄 수 있을까...?
빛이 너무 적고 토질이 썩 좋은 편이 아닌데 싹이 제대로 틀 수나 있을까...?
그야말로 기우였다.
1주일 후,
그 황폐해 보이던 땅에 싹이 하나 둘씩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고
오히려 싹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어버렸다.
땅을 덮어버리는 목련 꽃잎이 잠깐동안 위협적이긴 했지만
매일마다 치워주었더니 별로 큰 문제도 아니었다.
또 구글이와 소백이가 해바라기 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만들었고
해바라기는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그러다가 위기가 왔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았더니 해바라기가 모두 쓰러져있는 것이었다.
전날 밤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이 심상치 않았는데
바람에 약한 해바라기가 모두 힘없이 중심을 잃어버렸고
일부는 줄기가 갈라지고 뿌리가 뽑히기도 한 것이다.
그 날 아침 얼마나 막막했던지 지금도 생생하다.
겨우 이만큼 자랐는데 여기서 다 끝나는 건가...?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서있다가
일단 억지로라도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무가지로 버팀대를 만들어 모든 해바라기를 실로 고정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런다고 괜찮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
이 작업하는데 꽤 손이 많이 갔던 것 같다.
그렇게 며칠동안 고정시켜주었더니
해바라기는 다시 하늘을 향해 자라기 시작했고
이젠 괜찮겠다 싶을 때부터 실을 풀어주게 되었다.
그리고 해바라기는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라서
어느 새 내 가슴높이만큼 자라 있었다.
어제도 비가 내렸다.
그날 아침부터 부는 강한 비바람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혹시 또 쓰러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바람이 조금 강해졌다 싶을 즈음,
해바라기가 괜찮을까 걱정되어서 밖에 나가 보았다.
해바라기는 모두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 때문에 가끔은 거의 쓰러질 정도였다.
비가 그치면 또 세워줘야되나, 하면서 계속 지켜보았다.
그런데...
거의 쓰러질 것 같던 해바라기가 바람이 잠깐 그치면
오뚜기처럼 다시 우뚝 서는 것이었다.
그래도 계속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저녁에 밖에 나갔다가 밤에 돌아와보니까
해바라기는 아무일 없었던 듯 서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장마철이 되면
이보다 훨씬 강한 바람이 불겠고 태풍도 오겠지만
이제 별로 걱정이 들지 않는다.
이제는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일은 있어도
다시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의 해바라기>
2005. 6. 13
4월 10일 파종 이후 벌써 2개월이 지났다.
처음에 막 싹이 났을 때,
옷에 흙이 묻는 걸 알면서도 엎드려서 사진 찍던 것이 마치 엊그제 같은데
언젠가부터 내 키에 가까워지더니 이젠 약 190cm 정도 되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처음으로 해바라기 야간 사진을 찍어보았다.
낮에는 잎을 활짝 펴고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지만
해가 없는 밤에는 그래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에
다들 잎을 내리고 잠을 잔다.
처음엔 시들어서 그런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다음날 아침이 되니까 다시 활짝 잎을 펴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밤에 나와서
잎을 내린 해바라기 사진이나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처음 씨를 심을 때부터,
해바라기 꽃이 피는 날을 너무나도 기다려왔다.
한 때는 해바라기가 피는 것을 보고 가기 위해
미국행을 9월로 늦출까 생각도 했었지만,
출국 일정이 이달 말로 확정되면서
해바라기 꽃은 보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도 내가 의미를 가지고 키운 해바라기가 잘 자라줘서
그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게 느껴진다.
<잠자는 해바라기>
2005. 6. 25 - 해바라기 꽃이 피다.
[출처] 해바라기영토 12일째 (발아 5일째)|작성자 하상
[출처] 해바라기 싹이 트다. 20050417|작성자 하상
[출처] 해바라기 싹이 트다. 20050417|작성자 하상



